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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로라와 빌디키드

[53]-로라와 빌디키드 

식별번호|VI-0000053

제목|[53]-로라와 빌디키드

설명|베를린의 터키계 유민들의 게이 하위문화에 관한 영화라는 점만으로도 눈이 번쩍 뜨이는 특별한 작품. 주인공 게이 소년 뮤라트는 엄마와 난폭한 마초이며 전제 군주처럼 집안에서 군림하려 드는 형과 함께 지낸다. 그가 사는 곳은 동시대의 베를린. 뮤라트는 무슬림계의 가족들이 먼 유럽의 대도시로 유랑을 떠나며 의당 품기 마련인 나은 삶에 대한 기대, 그리고 정작 자신이 바라는 게이로서의 삶 속에 끼어, 번민과 위험이 가득한 삶을 보낸다. 뮤라트에겐 가족들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은 또 다른 형에 대한 비밀이 있다. 밤마다 공원과 공중화장실에서 숨바꼭질하듯 자신의 섹스 상대를 찾던 뮤라트는, 마치 미로속에서 발견한 신비의 장소처럼 터키계 이민인 허슬러들과 성전환자들이 모여 있는 동네에 발을 디디게 된다. 여기에서 그는 자신의 숨겨진 형 로라와 그의 정부인 거리의 게이 매춘부 빌디키드, 그리고 자신의 위신과 지위에 연연하면서도 매춘부 소년들에 애면글면 집착하는 프리드리히 같은 이들을 만난다. 하지만 로라는 결코 그의 친동생 뮤라트에게 자신의 비밀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것이 탄로 났을 경우 로라가 빚어왔던 모든 삶은 그의 형인 난폭한 마초, 오스만에 의해 산산조각 나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태는 그들의 기대와 관계없이 펼쳐지는데. 디파 메타 감독의 인도 레즈비언 영화인 <화이어>나 장 유웬 감독의 <동궁서궁>처럼 비서구권, 특히 여성혐오와 마초주의가 각별한 아시아와 유럽 나라들은 자국의 동성애 영화에 대해 언제나 대경실색 하여왔다. 그리고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은 합창으로 그런 영화들에 대해 반응하였다. “그런 것은 우리 나라엔 없다”. 하지만 이는 비단 이 영화들이 자국에서만 겪는 엉뚱한 반응만은 아니다. 감독인 쿠투룩 아타만은 어느 인터뷰에서 이 영화에 대한 구상을 이야기했을 때 독일 영화계의 사람들이 보인 반응들 역시 한결 같은 것이었다 한다. “터키인 게이도 있습니까?” 결국 서구인들의 ‘성의 오리엔탈리즘’ 역시 국수주의적 민족주의의 성적 환상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이 영화가 터키에서 개봉된 직후 무슬림 내부에선 커다란 논란이 벌어졌고 감독은 자신의 이스탄불의 집에 걸려온 무수한 살해협박에 시달렸다고 한다. <로라와 빌디키드>는 인종주의, 그리고 계급적 갈등, 또한 폭력적인 가부장제, 이런 다양한 권력의 그물망들을, 17살 소년 뮤라트가 겪는 삶의 역정을 통해 꼼꼼하게 전개한다. 물론 이 영화가 더없이 “정치적으로 옳은” 영화라 추켜 올리기는 곤란하다. 적잖이 껄끄럽고 불편한 대목이 많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터키 게이들은 모두 이렇게 대책 없이 섹스에 몰두하는 걸까. 그들은 에이즈에 대해서는 전혀 아랑곳 않는 걸까. 그들의 게이로서의 세계는 성전환자들과 매춘부들이 가득한 음습한 하위문화뿐일까. 또 왜 터키 여자들은 모두 어머니 아니면 매춘부일 뿐일까, 등등. 그렇지만 이런 혐의들에도 불구하고 <로라와 빌디키드>가 통렬하고 한편으로 기지에 번뜩이는 웃음을 머금은 비판적 사회드라마로서의 미덕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출처 : 2000 Seoul International Queer Film & Video Festival 카탈로그>

감독|쿠트룩 아타만

기록유형|영상류

입수경로|기증(서울퀴어영화제위원회)

주제|트랜스젠더퀴어; HIV/AIDS

식별번호|VI-0000053

제목|[53]-로라와 빌디키드

설명|베를린의 터키계 유민들의 게이 하위문화에 관한 영화라는 점만으로도 눈이 번쩍 뜨이는 특별한 작품. 주인공 게이 소년 뮤라트는 엄마와 난폭한 마초이며 전제 군주처럼 집안에서 군림하려 드는 형과 함께 지낸다. 그가 사는 곳은 동시대의 베를린. 뮤라트는 무슬림계의 가족들이 먼 유럽의 대도시로 유랑을 떠나며 의당 품기 마련인 나은 삶에 대한 기대, 그리고 정작 자신이 바라는 게이로서의 삶 속에 끼어, 번민과 위험이 가득한 삶을 보낸다. 뮤라트에겐 가족들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은 또 다른 형에 대한 비밀이 있다. 밤마다 공원과 공중화장실에서 숨바꼭질하듯 자신의 섹스 상대를 찾던 뮤라트는, 마치 미로속에서 발견한 신비의 장소처럼 터키계 이민인 허슬러들과 성전환자들이 모여 있는 동네에 발을 디디게 된다. 여기에서 그는 자신의 숨겨진 형 로라와 그의 정부인 거리의 게이 매춘부 빌디키드, 그리고 자신의 위신과 지위에 연연하면서도 매춘부 소년들에 애면글면 집착하는 프리드리히 같은 이들을 만난다. 하지만 로라는 결코 그의 친동생 뮤라트에게 자신의 비밀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것이 탄로 났을 경우 로라가 빚어왔던 모든 삶은 그의 형인 난폭한 마초, 오스만에 의해 산산조각 나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태는 그들의 기대와 관계없이 펼쳐지는데. 디파 메타 감독의 인도 레즈비언 영화인 <화이어>나 장 유웬 감독의 <동궁서궁>처럼 비서구권, 특히 여성혐오와 마초주의가 각별한 아시아와 유럽 나라들은 자국의 동성애 영화에 대해 언제나 대경실색 하여왔다. 그리고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은 합창으로 그런 영화들에 대해 반응하였다. “그런 것은 우리 나라엔 없다”. 하지만 이는 비단 이 영화들이 자국에서만 겪는 엉뚱한 반응만은 아니다. 감독인 쿠투룩 아타만은 어느 인터뷰에서 이 영화에 대한 구상을 이야기했을 때 독일 영화계의 사람들이 보인 반응들 역시 한결 같은 것이었다 한다. “터키인 게이도 있습니까?” 결국 서구인들의 ‘성의 오리엔탈리즘’ 역시 국수주의적 민족주의의 성적 환상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이 영화가 터키에서 개봉된 직후 무슬림 내부에선 커다란 논란이 벌어졌고 감독은 자신의 이스탄불의 집에 걸려온 무수한 살해협박에 시달렸다고 한다. <로라와 빌디키드>는 인종주의, 그리고 계급적 갈등, 또한 폭력적인 가부장제, 이런 다양한 권력의 그물망들을, 17살 소년 뮤라트가 겪는 삶의 역정을 통해 꼼꼼하게 전개한다. 물론 이 영화가 더없이 “정치적으로 옳은” 영화라 추켜 올리기는 곤란하다. 적잖이 껄끄럽고 불편한 대목이 많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터키 게이들은 모두 이렇게 대책 없이 섹스에 몰두하는 걸까. 그들은 에이즈에 대해서는 전혀 아랑곳 않는 걸까. 그들의 게이로서의 세계는 성전환자들과 매춘부들이 가득한 음습한 하위문화뿐일까. 또 왜 터키 여자들은 모두 어머니 아니면 매춘부일 뿐일까, 등등. 그렇지만 이런 혐의들에도 불구하고 <로라와 빌디키드>가 통렬하고 한편으로 기지에 번뜩이는 웃음을 머금은 비판적 사회드라마로서의 미덕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출처 : 2000 Seoul International Queer Film & Video Festival 카탈로그>

영어 제목|Lola & Bilidikid

감독|쿠트룩 아타만

감독 원어|Khutlug Ataman

제작국가|독일

제작년도|1998

상영시간|93분

타입|35mm

흑백/칼라|col

자막|영어

소장형태|VHS

공식상영기록|2회 서울퀴어영화제

장르|드라마

원제목|Lola & Bilidikid

생산일시|1998

기술자|루인

언어|독일어

공개구분|공개

기록유형|영상류

입수경로|기증(서울퀴어영화제위원회)

주제|트랜스젠더퀴어; HIV/AIDS